
디스커버리
프로젝트 핼러윈
넛트 @DoItNow_Night
디스커버리호 안에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아무래도 코스튬을 갖춰 입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적당히 핼러윈의 분위기를 내는 장식들이 곳곳에 달려 있었다.
틸리는 사탕 바구니를 챙겼다. 방을 나선 걸음이 당연하다는 듯 에어리엄의 방으로 향했다.
“컴퓨터.”
방문객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리고, 안에서 들어오라는 다정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틸리는 자랑이라도 하듯 바구니를 높게 치켜들며 웃었다.
“짜잔~”
만들 때 분명 자신도 함께 있었지만, 에어리엄은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드물게 놀란 듯한 반응을 만들었다. 그저 눈이 조금 커지고, 상체가 뒤로 조금 젖혀진 것에 불과했지만, 틸리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건 에어리엄 거예요. 사탕이랑 초콜릿은 제가 조금 채웠으니까, 나머지는 직접 받아야 해요. 알았죠?”
“…….”
에어리엄은 바구니를 받고는 안을 살폈다. 잭 오 랜턴의 모양을 본뜬 바구니 안에 굴러다니는 간식 사이에 끼어 있는 강화 인간을 위한 물품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그건 정말 아무한테도 주면 안 되고요.”
에어리엄이 뭘 보고 있는지 눈치챈 틸리가 덧붙였다. 에어리엄은 고개를 들더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이걸 제일 먼저 주게 될 것 같은데?”
틸리는 에어리엄의 농담을 상처를 받은 척하며 휘청였다. 에어리엄은 그런 틸리의 팔을 잡아 부축해 줬다.
농담을 주고받으면 둘은 곧 가벼운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 * *
제일 먼저 틸리와 에어리엄이 만난 건 데트머와 오워세쿤이었다.
둘은 나란히 바구니를 들고 있는 틸리와 에어리엄을 보더니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곤 곧 입을 모아 외쳤다.
“Trick or Treat?”
“코스튬도 입지 않았으면서…. 게다가 따지면 저희가 받아야죠.”
사탕 바구니도 없는 둘의 협박 아닌 협박에 틸리가 볼이 멘 소리를 냈다.
‘저희’라는 말에 데트머와 오워세쿤이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웃었다.
“나중에 브릿지에서 줄게.”
데트머가 눈을 찡긋거렸다.
에어리엄은 결국 순순히 둘에게 간식거리를 주는 틸리를 보며 웃기만 했다. 나중에 데이터 저장소를 정리할 때, 제일 먼저 저장해 둘 순간이었다.
틸리는 꽤 묵직한 사탕 바구니를 흔들며 바삐 디스커버리호 안을 이곳저곳 쏘다녔다.
“잠시만, 틸리. 천천히.”
에어리엄이 드물게 난처한 목소리로 틸리를 불렀다. 그러나 틸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틸리는 스타메츠와 제트 리노에게 반강제로 사탕을 뜯어내기까지 했다. 그런 틸리의 모습에 에어리엄은 짐짓 놀라 자신의 사탕 바구니를 등 뒤로 숨겼다.
“에어리엄.”
틸리는 어서 그 바구니도 내놓으라는 것처럼 손짓했다. 에어리엄은 고개를 내저으며 주춤주춤 물러났지만, 드물게 고집을 부리는 틸리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타메츠와 리노는 서로를 보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냥 받아. 받고 가.”
리노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하며 낚아채듯 틸리의 바구니를 당겼다. ‘받고 가.’가 ‘제발 부탁이니 쟤를 데리고 여기서 썩 꺼져.’라고 들리는 듯해서 에어리엄은 틸리의 어깨를 감쌌다.
틸리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어깨를 감싼 손을 잡았다. 그리곤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에어리엄을 보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기관실을 나서며 틸리가 입을 열었다.
“에어리엄, 혹시 무서워요?”
“…바쁜 이를 귀찮게 하는 건 옳지 않아.”
에어리엄의 소곤거림에 틸리는 키득거렸다.
“전 가끔 저 둘이 무섭거든요. 제가 제일 긴장하는 게 저 둘 앞이고. 아, 물론 캡틴 앞에서도 그러고, 제독님 앞에선 더 그러지만요. 그래서 말이 많아지는데 그때마다 표정이 꼭…. 아.”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던 틸리가 제 입을 손으로 합, 틀어막았다. 에어리엄은 그런 틸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제가 또 말이 많았죠?”
“난 네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 틸리.”
“그러면 다행이지만요. 아, 나와 함께하는 이 모든 순간을 다 저장해야 해요. 알았죠? 특히 오늘은 전부 다요.”
“그건 생각해 봐야 할 문제 같은데?”
“아, 에어리엄~”
틸리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어리엄은 그 목소리가 무척 듣기 좋았다. 아무리 말해도 틸리는 믿지 않는 건지 부끄럽다는 듯 웃기만 했지만, 에어리엄은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둘은 다시 복도를 거닐었다. 만나는 이마다 둘이 나란히 들고 있는 바구니에 관심을 보였다.
다만 스팍만은 눈썹들 꿈틀거리더니 뒤로 물러났다.
“벌칸인은 당류를 먹지 않습니다.”
“…그냥 단순히 취해서 그러는 거야.”
마침 지나가던 마이클이 변명하듯 덧붙였다. 그 정도는 틸리도, 에어리엄도 알았지만 어쩐지 남매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별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틸리는 바구니를 한참 뒤적이더니 잭 오 랜턴이 프린트된 알사탕을 꺼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건 달지 않거든요. 당류를 소화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사탕이니까 벌칸인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들었는데, 혹시 아니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다른 간식을 드리면 되니까요.”
틸리의 말이 유난히 길어지자 마이클의 눈썹이 팔(八) 자를 그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말이 많은 걸 따지자면 스팍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걸 사탕이라고 부르다니, 흥미롭군요. 우주에서도 지구인들은 자신이 어느 행성에서 왔는지 유독 숨기지 않는 편이더군요.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고자 하는 이들은 많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족이 지내는 함선에서 유난히 자신의 출신 행성에서 유행하는 날을 퍼트리려고 하는 종족은 특정적이기 마련이죠. 또한 사탕은….”
“고마워.”
결국 마이클이 스팍의 말을 잘랐다. 틸리는 늘 과묵하게 직설적인 말만 할 줄 알았던 이가 이렇게 말이 많은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었다.
“아, 잊을 뻔했어요. 이건 마이클 거예요.”
틸리는 웃으며 마이클에게는 초콜릿을 몇 개 건넸다. 에어리엄은 사탕 바구니만을 매만졌다.
스팍과 마이클에게 어색한 인사를 남긴 둘은 브릿지로 향했다. 늘 있는 장소기도 했기에 가장 익숙한 이들을 많이 보는 곳이었다. 제일 처음 만났던 데트머와 오워세쿤 역시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틸리를 보더니 그녀에게 받았던 간식을 흔들었다.
“여기요.”
에어리엄은 틸리가 사루에게도 초콜릿을 건네는 걸 보았다. 사루는 조심스럽게 그걸 집더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한참 바라보았다. 조심스러운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잘 먹도록 하지.”
곧 다들 고개를 돌렸다. 아닌 척하면서도 틸리가 그들의 손 옆에 두고 가는 간식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종일 디스커버리호에 달콤한 냄새가 감돌았다, 꼭 밸런타인데이라도 되는 것처럼.
* * *
“그래도 역시 코스튬이 없어서 아쉬워요.”
라운지에 앉아 사탕 껍질을 까며 틸리가 투덜거렸다.
“근무 중이니까 그렇지. 아, 카디스-콧은 안 할 거니까 기분 풀어 달라고 조르지 마. 정말 안 할 거야.”
“아, 어떻게 알았어요?”
“얼굴에 다 쓰여 있잖아.”
에어리엄은 고개를 기울였다.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평소와 별다를 게 없었다.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얼굴을 모두 저장하기 위해 그녀는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데 틸리. 소령님은….”
데트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틸리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다들 걱정하고 있어.”
오워세쿤이 틸리의 어깨를 다독였다. 에어리엄은 어째서 그들이 틸리를 위로하고, 또한 걱정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전 정말 괜찮아요.”
틸리는 눈물을 꾹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컴퓨터, 영상 꺼.”
방금 전까지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던 풍경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프로젝트 핼러윈, 종료합니다.]
컴퓨터의 음성이 삭막하게 울렸다.
에어리엄의 데이터 저장소에 저장된 기억을 기반으로 컴퓨터로 만든 가상 현실 속에서 빠져나온 틸리는 작년에 에어리엄과 함께 만들었던 사탕 바구니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 안에 들었던 간식은 이미 텅 빈 지 오래였지만, 차마 바구니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 그 안에 담긴 추억 역시 버릴 수 없었다.
“틸리, 안에 있어?”
“네, 들어오세요.”
다급하게 눈물을 닦는 틸리의 모습을 봤으면서도 데트머는 모르는 척했다. 대신 찾아온 용건을 꺼냈다.
“올해 핼러윈은 어떻게 보낼 건가 해서.”
“당연히 작년처럼 보내야죠.”
틸리는 새로 만든 바구니를 들어 보였다.
새로 만들었지만, 그 역시 에어리엄과 함께 만들었던 것이었다.
“올해는 라운지에서 코스튬을 입는 건 허락한다고 했으니까, 꽤 떠들썩할 거야.”
“저도 코스튬을 준비했는데, 기대돼요.”
틸리와 데트머는 방을 나서며 과연 다른 행성 출신자들은 이 코스튬 행사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 따위를 논했다.
문이 닫히고, 컴퓨터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데이터를 저장소에 저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