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고메리 스코티
10월 31일
편 @picky_trek
“스콧 소령님 쿼터 가보셨어요?”
셔츠의 색에 상관없이 크루들은 모일 때마다 수군거렸다. 엔터프라이즈의 분위기는 잔뜩 들떠있었다. 다양한 종족이 모인 함선에서는 형평성을 위해 대부분 기념일은 비공식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젊은 간부들이 주축이기 때문일까, 크루들 또한 여타 함선에 비해 젊은 엔터프라이즈는 지구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기념일이란 기념일은 다 챙기려 들었다.
특히 오늘은 새해도 부활절도, 추수감사절도, 심지어 크리스마스도 챙기지 않는 기관실장이 유일하게 챙기는 날로 유명했다.
지구 날짜로 10월 31일, 할로윈이었다.
벌써 함선 복도에는 갖가지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피 할로윈!”
함장이 대표해서 뱀파이어 분장을 하고 브릿지를 누볐으니, 다른 크루들을 더 말해 무엇하랴.
“trick or treat!”
유난한 쿼터의 문 앞에 서서 뱀파이어 분장과 귀신 분장을 한 커크와 체콥이 나란히 두 손을 내밀었다.
“산 사람에게 줄 사탕은 없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콧은 사탕으로 가득한 바구니를 꺼내들었다.
“와아. 스코티 이번에도 화려하네.”
커크가 두 손 가득 캔디를 움켜쥐고 젤리를 옷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기관실장의 쿼터는 벌써 많은 사람이 오갔다. 크루들이 감탄하며 들어와서는 두 손과 양 볼이 볼록해져서는 나갔다. 스콧의 바구니는 자꾸 솟아나는 마법의 주머니처럼 끊임없이 캔디와 젤리, 초콜릿이 샘솟았다. LED 조명으로 속을 밝힌 잭오랜턴이 6개, 낄낄 웃는 호박과 박쥐 모양 풍선이 쿼터 천장에 붙었고, 할로윈이라고 써진 플래카드 양옆으로 유령과 마녀 인형이 벽을 장식했다. 거기다 기다란 볏짚 빗자루까지 나란히 놓였다.
“할로윈을 진짜 좋아하시나봐요.”
시프트가 끝나자마자 커크는 스콧의 쿼터를 봐야겠다고 들이닥쳤고, 함장 혼자서 오기에 면이 서지 않았는지 가장 어린 직속 부하를 달고 왔다. 아이들마냥 환한 얼굴을 보며 스콧은 투덜대던 입술을 닫고 빙긋 그들을 따라 웃고 말았다.
“한잔하러 갈 거지?”
애초의 목적은 술자리였다. 본즈가 없기에 어린 체콥을 달고 왔나 했더니, 러시아 위스키를 대놓고 뜯어낼 속셈이 분명했다. 스콧은 커크의 손짓과 체콥의 은근한 재촉 어린 눈빛을 받으며 사탕 바구니를 바닥에 놓았다.
“갑시다!”
엔터프라이즈의 복도는 평소의 푸른 조명 대신 오렌지빛 호박 장식이 밝혔다. 업무 중인 크루들도 들뜨는 마당에 휴무인 세 남자의 발걸음을 가볍고도 당당했다. 파티 분위기가 한창인 휴게실의 문을 열자 갖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꾸민 크루들이 가득했다. 산 자와 죽은 자, 괴물과 동·식물뿐만 아니라 행성을 본뜬 옷을 입은 크루, 심지어 포테이토를 좋아한다며 감자칩 봉지 옷에 피 같은 케첩 모자를 쓴 크루도 있었다.
“아주 이날만 기다린 모양이야.”
위스키나 진탕 마셔볼까 했더니, 스콧의 손에 들린 술은 눈알 모양 사탕이 장식처럼 올라간 칵테일이었다. 커크가 시작부터 달리진 못하게 막아섰기 때문이기도 했고, 본즈가 급체로 인한 환자를 돌보느라 늦게 온다고 기다려달라고 말한 탓도 있었다.
신이 난 크루들을 보며 스콧은 홀짝홀짝 빈 칵테일 잔을 늘려갔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술친구를 기다리느니 위스키라도 시작해야겠다. 뱀파이어 분장에 신이 난 커크가 간부들이 모여앉은 테이블을 비운 사이, 스콧은 지휘부 크루들이 모인 테이블에서 위스키 하나를 받아왔다. 몰래 훔쳐와서 눈치 보던 본즈와는 달리 체콥은 스콧에게는 기꺼이 제 비상 알코올을 내밀었다. 잘 따르는 후배 같은 부하에게 씩 웃고 주고는 위스키를 따랐다.
“쿼터는 그렇게 꾸며놓으시고는 소령님은 안 꾸미세요?”
“방 꾸미고 캔디 사는데 기력 다 썼어.”
프랑켄 슈타인으로 분장한 스팍의 곁에 앉은 우후라가 스콧의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그녀의 잔을 채우고 자기 잔을 채운 스콧은 스팍에게서 초콜릿 향이 나는 걸 보고 피식거렸다.
“부함장은 벌써 취했어?”
조명 때문에 알아볼 수는 없지만 움찔한 귀 끝이 초록빛일 게 분명했다.
“제가 준 캔디가 초콜렛이었지 뭐에요.”
호호호. 악마 분장을 한 우후라의 농도 짙은 웃음에 스콧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 없다고 다 해치운 줄 알았는데 그거밖에 안 마셨어?”
스콧이 위스키를 막 시작하려던 참에, 하얀 의사가운에 가짜 피를 묻힌 붕대를 대충 감은 본즈가 나타났다.
“너 분장에 성의가 없어. 본즈!”
나 정돈돼야지. 커크가 길쭉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안 하겠다고 했는데 니가 억지로 입으라고 준 거잖아. 스코티도 분장 안했고만!”
지미, 네 이놈! 본즈가 하이포 대신 커다란 장난감 주사기로 커크의 등짝을 후려쳤다. 어른들 술 마시는데 끼지 말라며 본즈가 호통을 치자, 이때다 싶어 우후라가 스팍의 손을 잡고 물러났다. 본즈와 투닥거린 커크는 체콥이 다 마시지 못한 고향 보드카를 아련하게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목을 휘어 감고 데리고 돌아다녔다.
스콧이 아직도 비우지 못한 술잔에 본즈가 자신의 잔을 댔다. 챙. 맑고 날카로운 소리에 이제야 술맛이 제대로 나기 시작한다.
“우주에까지 귀신이 쫓아올까?”
“멀어서 오겠어? 우주의 어디에 있는지 알고?”
그것도 그렇네. 본즈는 지구에 두고 온 쓰라린 기억들을 되살렸다. 우주에서도 제 손으로 살리지 못한 수많은 생명이 있는데도 처음이라 그런가, 의사 초년생 시절 지키지 못한 생명이 아직도 눈에 밟혔다.
“그래도 제니는 천국에 있을 거야. 천사 같은 아이였거든.”
평소에는 쳐다도 보기 싫어하던 투명한 창밖의 우주를 쳐다보며 본즈는 상념에 잠겼다. 그 손으로 살려낸 생명이 몇인데 덩치에 안 맞게 처량하게 처진 어깨가 영 보기 안쓰럽다. 스콧은 술을 한 번에 털어놓고는 위스키 병을 들고 말했다.
“다시 만나려면 네가 고생 좀 더 해야겠다.”
“내가 어떻게 이 이상 착하게 살아? 이만하면 엔터프라이즈 백의의 천사 아니냐?”
본즈의 술잔도 금세 깨끗이 비웠다. 제 잔보다 그의 것을 먼저 채우며 스콧이 킬킬거렸다.
“풋. 벌써 취했수, 의사 양반?”
웃느라 술은 넘쳤고 다치지도 않아놓고선 감긴 붕대를 적셨다.
“으휴. 귀찮아. 담에 하나 봐라!”
“그래도 지미보이가 부탁하면 해줄 거면서.”
“너는 아니냐? 너는?”
“레드셔츠가 오래 살려면 함장한테 찰싹 붙어있어야 하는 거요. 독자 권력 있는 의사 양반이랑은 달라.”
“다르긴 뭐가. 엔티 심장 움켜쥐고 있는 놈이 안 하겠다 뻗대면 어째. 너는 한번 개기는 걸 못 봤다.”
“어허. 기관실장 가오 구기는 소리마슈. 내가 얼마나 꼿꼿하게 의견을 펼치고 버티는 줄 알아?”
제임스 커크에게 약하기라면 일인자가 서러운 둘이 투덕거리는 동안 러시아 위스키는 아작 났고, 어디선가 옮겨진 보드카, 브랜디. 꼬냑까지 바닥을 보였다.
“내일 되면 아주 죽어나겠어.”
다른 테이블에서 건네주고 얻어온 것들이라 한 병 꽉 차게 다 마신 것은 아니지만 각기 다른 양주가 위장에서 트위스트를 추는 게 벌써 느껴진다. 스콧은 제 가슴팍에 손을 잠시 얹었다가, 손에 들린 술을 마저 마셨다.
“넌 내가 제임스 새끼 살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지? 제니한테도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려구…”
“취했군. 의사 양반.”
만취한 본즈의 레파토리가 시작됐다.
“제임스 커크. 이 새끼야. 넌 나보다 먼저 죽으면 용서 안 해. 진짜!!”
술친구인 스콧은 종종 봐왔고, 절친인 함장은 더욱 더 잘 아는 주정이었다. 하지만 함선의 크루들 모두가 아는 건 아니었기에 본즈가 소리치자, 뱀파이어 복장의 커크는 곧장 달려왔다.
“많이 취했네. 본즈.”
“지미보이. 이 녀석아.. 아프지 마라. 너어...”
“그래그래. 안 아플 게.”
“다치지도 마.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마. 넌 알레르기 제조 공장 같은 놈이야. 이 자식아. 내가 너 살리려고 얼마나. 히끅-”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가면 본즈는 제니와 제임스를 섞어 부르면서 통곡할 차례였다. 커크가 비틀대는 본즈를 부축했다.
“어서 가보슈.”
“둘이 얼마나 마신 거야. 스코티. 넌 괜찮아?”
“나야 멀쩡합니다.”
“너도 메디베이 가서 하이포 맞아.”
커크의 머리칼을 쥐어뜯듯이 쥐었다가 본즈의 코끝이 벌름거리며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알았지. 꼭 이다?”
“네네. 어서 가요. 곧 울겠어요.”
스콧은 똑바른 억양으로 흐트러지지도 않은 채 꼿꼿이 손을 흔들었다. 커크는 미심쩍게 보면서도 본즈가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반쯤은 안아 들고서 밖으로 이끌었다.
“제임스- 지미- 이 잘생긴 놈아아- 으허허헝- 다 네가 죽어서 그래. 으어엉-”
“그래그래. 내가 미안해- 미안-아앗. 머리칼은 그만 당겨. 가자. 본즈- 응?”
“얼굴 관리 잘해라. 이 자식아. 너 못생겨지면 다신 안 살려줄 거야. 제임스.. 제임...제니야아-”
본즈의 통곡이 휴게실의 문이 열릴 때마다 복도에서 안쪽 끝까지 퍼졌다. 더불어 함장이 끙끙대며 달래는 목소리까지도 간간이 들려왔지만, 점점 멀어지면서 곧 파티의 음악에 묻혔다.
“괜찮으세요?”
마신 거로 치면 체콥이 일 순위일 텐데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스콧의 곁으로 다가와 도리어 그를 걱정했다.
“괜찮다. 오늘은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하는 날이야.”
“너무 섞어 드셨어요. 오늘은 괜찮아도 내일이면 숙취로 고생하실걸요.”
꼬불꼬불한 금발의 앞머리가 들썩이는 이마를 따라 움직였다. 어린 크루까지 걱정시키는 레드셔츠의 수장이라니. 이게 무슨 수치야. 스콧은 자릴 비울 때가 됐다 여겼다.
“이만 쉬러 가야겠다.”
“해장 하이포는 있으세요? 여분이 없으시면 제 것을 드릴게요.”
“너나 써. 미스터 체콥.”
스콧은 아일 쓰다듬듯 체콥의 이마와 앞머릴 쓸어 넘겨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다 못해 커크에게 안겨 나갔던 본즈와 달리 걸음걸이에 흔들림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체콥이 스콧의 바로 곁에 다가와 서서 휴게실 문 앞까지 따라왔다.
“미스터 스콧. 괜찮으세요?”
평소의 주량으로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맨정신이었다. 걱정에 눈썹이 바닥까지 처진 체콥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멀쩡해.”
“제가 쿼터까지만이라도..”
휴게실 문밖으로 발을 내미는 귀신 분장을 한 소년에게 스콧은 쓰읍. 엄한 표정을 지었다가 힘을 풀고 웃었다.
“해피 할로윈. 체콥.”
굿나잇 인사와도 같은 말에 체콥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기관실장의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파티 공간에서 멀어지자 복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벽은 여전히 주황색 잭오랜턴이 밝혔다. 스콧은 으시시하게 웃고 있는 호박 얼굴을 보다가 창밖의 우주 풍경에 눈을 돌렸다.
“우주에까지 쫓아올 귀신이 있을까.”
스콧은 본즈의 말을 조용히 되뇌었다. 단 몇십 년 사이에도 발전을 거듭한 스타플릿의 우주선은 조금만 더 가면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을 정도로 빨라졌다.
“그랬으면 좋겠네.”
스콧의 또박또박한 걸음은 주황빛 조명 속에 조금씩 과거의 기억으로 걸어 들어갔다.
“레드알럿-!!!”
알람이 울리고, 푸른 조명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그와 같은 색의 셔츠를 입은 한 뭉텅이의 사람들이 우주 밖으로 빨려 들어갔다. 함선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깊숙한 심장 소릴 들으며, 가장 오래 머무는 기술부 크루들은 그렇게 형체도 없이 우주 밖으로 사라졌다.
“흔한 일이야.”
몽고메리 스콧이 첫 승선한 함선의 기관실장은 괴팍한 사람이었다. 함장마저 비통해할 정도로 많은 레드셔츠의 죽음에 그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엔진실의 한구석을 제멋대로 개조해 개인실로 쓰면서, 붉은 빛깔의 차를 마시곤 했다. 가장 어렸음에도 눈에 띄는 총명함으로 기관실장의 최측근이 된 스콧은 그의 소매에 새겨진 두 줄의 선을 우러러보며 새로운 탐사와 항해를 기대했다.
“레드셔츠들은 원래 그렇게 죽어. 그나마 우린 안전한 쪽이지.”
레드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스패너와 나사를 조이는 치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기관실장은 전투 크루들과도 같은색 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때때로 그들과 운명을 같이 했다.
“망망대해에서도 태풍을 만나면 배가 뒤집어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우주라고 별 거 있겠어?”
십 대 후반의 생기가 펄펄 날리는 꿈많은 소년을 앞에 두고 기관실장은 가차 없었다.
“우리가 죽는 날은 지구 날짜로 기억이 돼. 스타플릿은 지구를 기준으로 활동하니까. 그러니 나도 죽으면 지구의 언어로 기록되겠지.”
행성 연합의 공식기록은 다양한 언어로 남겨지게 되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공용어인 영어일 뿐인데 뭐가 그리 억울한지 은빛 두 줄이 그여진 붉은 소매 옷을 입은 외계인은 내내 툴툴거렸다.
일 년이 채 못되어 스콧이 지구로 돌아가 스타플릿에서 연구를 하기로 결정한 그 날, 기관실장은 하선신청서를 승인하며 말했다.
“잘했어. 너도 단명하는 빨간 옷은 벗고 오래 살아. 오래.”
일하는 내내 너같이 예민하고 앙칼진 놈은 여기서 오래 못 버틴다며 신입 레드셔츠를 마구 겁주고 깔아뭉개놓고서는 이제 간다니 어울리지도 않는 덕담을 했다. 스콧은 그를 비웃었다. 간다니까 아쉬워서 잘해주는 척이다. 끝에 가서야 나쁜 놈이 되기 싫은 종자는 지구 안팎 우주의 어디에도 다 있는 모양이다. 스콧은 그렇게 첫 승선에 대해 특별히 배운 거도 없고 깨달은 것도 없는 시답잖은 항해로 기억했다.
몇 시간 뒤면 중간 기항지에 도착하고, 스콧이 내리면 영영 인연이 없을 함선, 기관실장, 레드셔츠였다.
“으아아악--------”
비명이 우주선을 꽉 채우고 진공으로 터져나갔다. 스콧의 하선을 3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시프트도 없어 쉬고 있었다. 조촐한 짐을 침대의 한쪽에 올려놓고, 패드를 들어 그동안 새로 발표된 논문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뻥!!!!!
폭발음과 동시에 옆 쿼터가 뜯겨져 나갔다. 스콧은 바로 문을 열고 달렸다. 우주선을 뜯어먹는 무중력이 괴물처럼 휘몰아쳤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고, 힘이 없는 팔다리는 파이프를 잡고 버티다 점점 풀렸다.
“스콧----!!!”
누군가 갑자기 잡아당긴 억센 힘에 안으로 밀렸다. 우주선의 복도 벽에 마른 몸이 쨍하고 부딪혔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었다.
[차단 막이 생성되었습니다-]
스콧이 놀란 눈을 겨우 떴을 때, 한 레드셔츠가 무중력의 공간에 쓸려가고 있었다. 얼굴도 보지 못했다. 벌어진 팔의 끝에 두 줄의 은테로 인해 기관실장이었음을 알았다.
왜 나를 살렸어. 흔한 레드셔츠잖아. 곧 레드셔츠도 아닐 사람이었잖아.
스콧은 통증에 눈에서 물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따스하지 않았던 기관실장이 저를 위해 죽었을 리가 없었다.
[투명차단막이 생성되었습니다. 위험하니 떨어지십시오.]
컴퓨터는 냉정하게 스콧의 손끝을 쳐냈다. 투명한 천의 사이로 스콧은 살았고, 어떤 맘으로, 어떤 표정인지 알지도 못한 레드셔츠 한 명은 죽었다. 아스라이 제 이름을 부른 목소리만 흐릿하게 남았다.
스콧이 서 있는 투명한 우주의 창밖으로 스타플릿의 함선이 하나 둘 워프해서 나타났다. 클링온의 습격이었다.
“한 번쯤은 나타나 줄 수도 있잖아.”
우주 곳곳을 누볐으니 여기가 어딘지 잘 찾아올 수 있을 텐데. 스콧은 쿼터에 앉아 중얼거렸다. 머린 어지럽고 속은 메스꺼웠다. 해장 하이포가 서랍 안에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지는 고통만이 살아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스콧은 흔하게 죽은 레드셔츠를 떠올렸다.
손가락이 두 개 더 많았고, 보통 인간들보다 1.5배는 덩치가 컸다. 금연이 보편화 된 시대에 홀로 꿋꿋이 흡연실을 찾아가는 애연가이기도 했다. 비상한 두뇌와 빠른 판단력으로 엔진 이상에 함선을 버리지 못하는 함장을 윽박지르고 멱살을 잡았다는 괄괄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사연과 이력이 있는 레드셔츠는 많았다. 기계가 좋아서 애인의 이름을 함선에 붙여서 부르는 바람에 헤어진 신입 크루라거나, 징징 울리는 엔진음을 들으면 두통이 가신다는 너드, 몽고메리 스콧이 낸 논문을 페이지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달달 외우는 광적인 공학도까지.
“앗. 뜨거!”
언제 차를 꺼내 마셨지. 알코올에 홍차까지 들이부은 스콧의 위장이 조만간 찢어질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생생한 고통에 식은 땀을 흘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지구 시간으로 10월 31일 밤 11시 50분이었다.
“십분 남았네.”
흔한 일이고, 흔한 죽음이었으니 기념할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었다. 스콧의 첫 기관실장은 남은 가족도 남긴 유산도 없었다. 몇 편의 논문과 학위가 다였다. 스콧은 초콜릿과 캔디가 가득한 봉지를 꺼냈다. 일 년간 모았더니 크루들에게 나눠주고도 새 바구니 하나 가득 찰 정도로 많았다.
바구니를 안고, 기관실로 갔다. 계단과 통로를 돌고 돌아 내려간 스콧은 3번 출입구의 문 앞에 섰다. 내부 게이트가 열리고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또르르. 작은 부딪힘에 캔디 두어개가 바닥으로 흘렀다. 되돌아 다시 안으로 들어온 스콧은 내부 게이트의 창에 얼굴이 최대한 밀착했다. 눈을 크게 뜨고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듯이.
손을 뻗어 외부 게이트의 문을 열었다.
슝- 문이 열림과 동시에 폭발하듯이 거세게 공기가 빨려 나갔다.
바구니는 우주 밖으로 내던져졌다. 춤을 추듯 그림을 그리며 색색의 캔디와 초콜릿, 젤리들이 무중력을 누볐다. 작고 귀여운 포장들이 별빛처럼 반짝이며 엔터프라이즈가 지나온 길을 따라 길고 넓게 퍼졌다.
“happy halloween.”
할로윈에 죽은 이가 그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들의 축제를 유별나게 챙기는 이도 아니었으니 그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스콧은 한 손으로 다른 옷의 소매를 꼭 쥐었다. 그도 자신도 흔한 지구인이었고, 흔한 레드셔츠였다. 고작 소매에 두 줄이 그여진.
10월 31일. 엔터프라이즈의 기관실장은 일 년에 단 하루 자신에게 특별해진, 흔하지 않은 레드셔츠를 기억했다.
